[정덕현의 별자리 스토리] 엉뚱한 표현처럼 들리겠지만 현빈은 게처럼 단단한 껍질을 갖게 된 배우다.
입을 앙다물고 뒷짐을 진 채, 고개를 살짝 틀어 지그시 누군가를 바라보면 도도하다기보다는
어딘지 다른 세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크릿 가든'에서 길라임(하지원)과 함께 누워 가까이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장면이나,
윗몸 일으키기를 하면서 눈을 마주치는 장면에서도 현빈은 상대방과 어떤 거리를 유지한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단단한 껍질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다.
아주 가까이 있지만 멀리 존재하는 듯한 그 아련한 느낌. 이것이 현빈이 가진 아우라다.
껍질의 내면, 꾹꾹 눌려진 감정들
그 현빈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은 현빈의 많은 내면들을 숨긴다.
그 현빈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은 현빈의 많은 내면들을 숨긴다.
그는 늘 그 고형의 딱딱함 속으로 감정을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자존감과 도도함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그를 차도남, 즉 차가운 도시 남자로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느낌 때문이다.
그는 쿨하다. 결코 자기 연민 따위에는 빠지지 않을 것처럼 꼿꼿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또 따도남이라고도 부른다.
왜? 가끔씩 그 단단한 껍질 속으로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들이 껍질 바깥으로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시크릿 가든'에서 뇌사로 깨어나지 않는 길라임 대신 죽기를 각오하고 마지막 편지를
'시크릿 가든'에서 뇌사로 깨어나지 않는 길라임 대신 죽기를 각오하고 마지막 편지를
쓰는 그 장면이 그렇다.
그 장면에서 현빈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는데, 도대체 이 차가운 사내에게
이토록 많은 물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 17회 가까이 눈물 한 방울 쏟아내지 않던, 바늘로 찔러도 여전히 도도하게
서 있을 것만 같던 이 사내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누르고 있었구나. 그 많은 감정들을.
현빈은 그런 배우다.
감정을 바깥으로 폭발시키는 게 아니라, 안으로 꾹꾹 눌러 놓음으로서
오히려 그 감정을 증폭시키는.
껍질을 만든 성숙에 대한 갈망
이 껍질을 구성하는 요소는 꽤 많다. 성숙에 대한 갈망.
그래서 성숙해질 때까지 모든 걸 기꺼이 겪어내려는 자세.
현빈은 모 인터뷰에서 "서른 살이 되고 싶다"고 하며 20대에 아무리 연기를 해도
30대 연기가 안 되는 건, 인생의 경험치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년의 얼굴을 가졌지만 그 '경험치'를 연기에 담고 싶은 소년의 선택은 모든 것들을 겪는 것이다.
작품을 할 때마다 조금씩 배워가는 자세로. 기꺼이 삶을 겪어내는 자의 껍질은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빈의 껍질은 외부의 고통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성숙하고 싶은 이 소년은 오히려 외부로 그 고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껍질을 살찌웠다.
성숙에 대한 욕구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껍질의 요소는 과장을 줄이고 진심을 담는다는 것이다.
호들갑이 아니라, 기교가 아니라, 온몸으로 마음을 드러내는 연기.
현빈이 부른 '그 남자'가 어딘지 투박해도, 기교와 절절한 창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백지영의 노래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그 온몸으로 부른 듯한 정직함에 있다.
껍질 속으로 숨겨진 깊은 우수
껍질 속으로 숨겨진 깊은 우수
그래서 이 아무리 두터운 껍질에도 그 속내를 바깥으로 드러내는 눈빛에는 우수가 서린다.
그가 지금껏 해왔던 작품 속 캐릭터들이 일관되게 보이는 어떤 우울은 캐릭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빈이 가진 연기자로서의 몸피가 그 부분에서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논스톱4' 같은 시트콤 속에서도 어떤 묵직한 감정을 전해주었고,
'내 이름은 김삼순'의 밝고 경쾌함 속에서도 어떤 그늘을 느끼게 해주었다.
'눈의 여왕'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뒤에도 여전히 버티며 살아가는 한 남자를 연기했고,
'친구, 우리들의 전설'에서는 거의 표현을 하지 않는 두꺼운 껍질 속에 숨겨진 가녀린 영혼을 연기했다.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보여줬던 동수가 칼날 같은 강렬함이 있었다면,
현빈의 동수는 그 칼날 안에 담겨진 슬픔이 있었다.
현빈이 즐겨듣는다는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처럼, 그의 연기에는
현빈이 즐겨듣는다는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처럼, 그의 연기에는
껍질을 깨져나갈 때의 슬픔이 깔린다.
그래서 그가 한참 웃고 있을 때조차도 그 웃음 뒤에 숨겨진 비극적인 전조를 자꾸만 읽게 된다.
'시크릿 가든'이 그토록 수많은 전조들로 가득 차게 된 것 역시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 찬란한 미소 속에 담겨진 깊은 그늘은 보는 이를 서늘하게 만든다.
드라마가 끝났지만 여전히 그 열기가 식지 않는 건, 그 아픔의 정조가 주는 긴 여운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오롯이 누워 있는 소년. "나 어른이야"하고 말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소년의 눈빛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그 아픔.
이것이 현빈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들이다.
소년과 성숙함이, 유쾌함과 슬픔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 현빈이라는 별자리가 세워진다.
소년과 성숙함이, 유쾌함과 슬픔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 현빈이라는 별자리가 세워진다.
점점 젊어지는 육체와 성숙한 정신에 대한 현대인들의 욕망은 현빈이라는 별자리의 의미다.
차가운 도시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필요한 건 그 힘겨움을
성숙의 과정으로 승화시키는 일일 게다.
과장보다는 진심을 원하고, 작은 일에도 엄살을 떠는 것보다는 큰 일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배에 잔뜩 힘을 주는 하드보일드한 내면의 소유자는 그래서 우리 시대의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무엇보다도 강하고 매력적인 껍질을 갖고 있기에, 온 몸을 던져 빗속으로 뛰어드는 그.
그가 바로 현빈이라는 별이다.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엔터미디어|입력 2011.01.25 10:09|수정 2011.10.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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